1월 14일 (토) 야촌님과 힘께.
이왕이면
건조한 겨울산 보다는
눈꽃 핀 산길을 걷는 게 좋지 아니한가..
전날 설천동과 영동쪽에만 눈 소식이 있어
덕유산으로 갈까 생각하다가 복잡한 덕유산 보다는
지난번에 마치지 못한 숙제 삼도봉을 오르기로 하였다.
새벽 일찍 출발 하면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을 수도 있어
집에서 6시에 출발 하였는데
물한계곡으로 올라가는 고갯길 도로는 빙판이 되어 있어
천천히 달리다 보니 203km를 3시간 가까이 달렸다.
가는 길에 야촌님과 차 안에서 꿈 얘기를 나눴는데
어젯밤 꿈에 야촌님과 어떤 남자랑 셋이서
산길을 헤매는 꿈을 꿨는데 계속 산만 헤매다 꿈을 깼다고 했더니
그 남자가 겨울산이나 노루발.... 아니었냐고 한다.ㅎ
전혀 가까이 있는 사람은 아니고,
꿈속에선 분명 아는 사람이었는데 친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꿈 얘기를 하며 물한계곡 5km 남은 마을길을 지나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내 차를 가로질러 지나간다.
아침에 동물이 지나가면 재수가 좋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 때문에
출근길에 동물이 지나가면 괜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곤 했는데
오늘도 동물이 지나갔으니 분명 대박이라고 했다.
그렇게 꿈을 꾼다는 것
꾸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
황룡사(9시) - 삼도봉(12시 10분) - 석기봉(2시) - 무지막골(3시 40분) - 황룡사(5시 40분)
민주지산과 삼도봉 갈림길
황룡사에 도착하니 8시 50분
올 들어 최고 추운 날씨다.
황룡사 아침 기온이 -8도
이 정도면 산정상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할 수 있기에
추위에 견딜 수 있을 만큼 따뜻한 차와 옷을 챙기며
칼바람과 맞설 생각을 하니 조금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였다.
9시부터 천천히 산행을 시작한다.
막 산행 시작하면서 야촌님이 “참 대단해 아줌마 둘이...!”
뜬금없이 한 마디 던진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두려움이 스쳐 간다.^^
석기봉 갈림길
계곡 징검다리를 건너고
잣나무 숲을 지나고
11시 삼마골재 지나면서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휘몰아치는 바람을 피하기 위해 준비 해 온 옷들을
모두 껴입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위에만 일곱 ^^
얼굴이 에이고
손도 너무 시려 감각이 없다.
아~ 춥구나! 느끼는데
야촌님이
얼굴도 차고, 손도 시립다고
응석 부리듯이 말을 하는데 막내 티가 느껴져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러면서도 자신 만의 남다른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내 모자위에 내려앉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고개를 숙여 보라고 한다.ㅎ
12시 10분 삼도봉 도착
삼도봉에 올랐던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다.
바람이 너무 불어서 정상에 서 있지 못한다고
단단히 챙기고 올라가라고 한다.
작년 2월에 소백산 비로봉 오르기 전에
체온 조절을 못해 저체온증을 느꼈던 경험이 있기에
정상 오르기 전에 바람이 없는 곳에 자리 잡아
야촌님표 따뜻한 호박죽으로 몸을 따뜻하게 하고
천천히 정상을 향해 걸었다.
삼도봉 오르는 능선은 바람이 심했지만
막상 삼도봉에 오르니 포근하다.
삼도봉에서 바라보는 석기봉과 민주지산, 각호산
온 산이 상고대로 하얗게 피었을 것이라는 꿈은 깨졌지만
하늘이 열려 반갑고, 칼바람과 맞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만큼
아찔한 순간들이 짜릿하기만 하다.
석기봉으로 향하는 능선은 파란 하늘에 더욱 하얗게 빛나는 눈꽃세상이다.
파란 바다에 피어난 산호초처럼 반짝 거리고,
지난번 내려왔던 바위 오름길도 색다른 맛이다.
일곱겹으로 껴 입은 옷
두겹으로 낀 장갑
둔하기 그지 없다.
저기 덕유산이 보였는데
사진에는 표현이 되지 않았다.
2시 석기봉 도착
석기봉에서 민주지산까지 3km 인데 4시까지는 민주지산에 도착하여야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갈 수 있는데 우리 걸음으로 가능할지....
산행 수준과 취향이 닮아서 10년 넘게 같이 다니는 것이지만
오늘 같은 날은 닮지 않았어야 했다.
산에 오르면 조급해 하지 않고
오직 그 산에 몸과 마음을 맡겨 버리는 여유
그것이 우리가 닮은 점이다.
석기봉 아래 큰삼거리앞에서 부산에서 왔다는 산악회원들이 망설이고 있었다.
그냥 내려갈 것인지 석기봉 올라 내려갈 것인지 고민하다가
우리 보고 석기봉까지 얼마 걸리냐고 묻는다.
1.5km만 가면 석기봉이니까
아름다운 석기봉 오르길 권유 했는데
산에서는 그런 권유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큰삼거리 지나면서 따뜻한 생강차와 빵으로 요기를 하고
다시 민주지산을 향해 걷고 있는데
민주지산에서 내려오는 분들이 걱정을 한다.
그때 미련 없이 돌아 서서 그 사람들과 같이 내려왔어야 했는데
민주지산은 상고대가 많이 피었다는 소리에
뒤돌아 섰다가 다시 또...
過猶不及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고 했던가....
사람들은 모두 석기봉이나 삼도봉으로 내려가고
민주지산으로 향하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이다.
이제 뒤돌아 가기엔 너무 멀고 민주지산을 오를 시간이 되지 않으면
오르기 직전 갈림길에서 내려가야 한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열심히 걸어야 하는데 조금만 오름길이 나오면
숨이 차고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해는 자꾸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고, 마음은 바쁘고 발은 떨어지지 않고
그런 와중에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 쳐다 보니
우리 앞 등산로를 가로질러 멧돼지가 달려가다 멈췄다.
순간 우리는 얼음이 되어 버리고,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
뒤돌아 가려니 너무 많이 와버려 큰삼거리까지는 너무 멀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무조건 앞으로 가서 민주지산 아래 갈림길까지 가야 하는데
나보다 더 얼음이 되어 버린 야촌님을 보니
내가 용기를 내야 할 것 같아 앞서 천천히 걸었다.
다행히 녀석은 아래로 내려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작은 삼거리 쓰러진 이정표가 나오는데 민주지산 0.8km를 남겨 놓고 있다.
무조건 아래로 내려 가야 한다.
초입에 발자국이 있다가 사라진 것을 보면
이쪽으로 내려가다가 뒤돌아 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하산길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마구 달렸다.
멧돼지 발자국이 보이고 먹을 것을 찾아 땅을 파헤친 흔적도 보인다.
야촌님이 앞장서서 달리고 나는 조금 거리를 두고 달렸다.
한참 달리다가 손이 닿을 만큼 가까이에 있는 겨우살이를 보고
그걸 당겨서 찍어 보라는 야촌님의 여유에 또 한 번 웃었다.
그 와중에....^^ 야촌님이기에 가능한 맨트다.
1시간 이상을 달려 내려가는데 드디어 잣나무 숲이 보이기 시작하고
사람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사람이 반가울 수가 있다니
너무도 반가워 반갑다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그 사람들은 별 반응이 없다.^^
하산 시간 5시 40분
빨리 차에서 몸을 녹이고 집으로 가야지 생각했는데 차 문이 열리지 않는다.
리모콘이 작동하지 않는다.. 스마트키가 얼었다.
카메라 베터리가 얼어서 두 컷 찍고 나서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가
비벼서 다시 찍고 했으면서 스마트키가 얼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차 안에 비상 홀더가 있다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현대서비스 기사 오는 동안 식당에서 저녁 먹고
감사하게도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9시 10분 하루를 돌아보며 정리 해 보니
전날 꿈에 산길을 같이 헤매던 남자가 멧돼지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ㅎ
아~~ 민주지산이여...
그래도 다시 그립구나.
다음엔 각호산과 민주지산만 걷고 석기봉까지는 가지 말아야지....^^
올들어 최고의 매서운 칼바람과 맞서 이겼으니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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